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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재판소 ‘졸속 재판’의 심각성
- 헌법재판관 임명보류 권한쟁의심판에서 나타난 헌법재판소의 오점(汚點) -
이인호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
2025년 2월 3일(월)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후 2시 예고했던 선고를 2시간 전에 취소하면서 2월 10일(월) 변론을 다시 열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선고는 국회 선출의 헌법재판관(마은혁) 임명을 보류하고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제1부총리)의 임명 보류(부작위)를 위헌이라고 다투는 ‘사건들’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사건들’이라고 한 것은, 국회의장이 청구한 권한쟁의심판(2025헌라1) 외에 동일한 임명 보류(부작위)를 다투는 헌법소원심판청구가 4건(2024헌마1203; 2024헌마1214; 2024헌마1217; 2025헌마1) 더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권한쟁의심판청구(2025헌라1)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임명 보류로 인해 국회가 자신의 ‘재판관 선출권’을 침해당했다고 다투는 사건이고, 헌법소원심판청구는 개인(또는 변호사)이 임명 보류로 인해 헌법재판소가 9인 완전체로 구성되지 못함에 따라 자신의 기본권(재판청구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사건이다. 둘 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임명 보류를 다투는 것이긴 하지만, 소송요건이나 본안 판단의 쟁점은 크게 차이가 있다. 헌법소원심판청구는 모두 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각하(却下)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이 점은 다음 기회에 논증하기로 한다.
이 글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선고 2시간 전에 선고를 취소한 배경과 그 이유를 짚어 봄으로써 이번 ‘졸속 재판’의 심각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지난 1월 22일(수) 헌법재판소는 위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대해서만 한 차례 변론(80분)을 열고는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이틀 뒤(24일)에 선고일을 2월 3일(월)로 한다고 발표했었다. 설 연휴(27일~30일)가 지나고 바로 선고하겠다는 것이다. 위 4건의 헌법소원청구 사건은 변론도 없이 서면만 오고 갔다.
기간 계산을 해 보면, 헌법재판소는 변론을 연 22일(수) 다음날인 23일(목)에 재판관 평의를 열어 결론을 내리고 선고일을 2월 3일(월)로 결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일 결정문 초안이 작성되었을 리는 없고, 초안 작성을 그다음 날(31일)과 설 연휴에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전원일치 결론이라고 하더라도 결정문 초안을 작성해서 각 재판관에게 회람하고 승인을 받는 시간이 필요한데, 연휴 기간을 빼면 가능한 업무일은 1월 31일(금) 하루뿐이다. 만일 의견이 대립했다면, 서로의 의견서를 받아보고 반박하는 의견을 담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계산상 거의 나오지 않는다.
변론 후 며칠 만에 선고하는 이런 초스피드 선고는 헌법재판소 36년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미연방대법원은 변론 후 통상 4~5개월 안에 선고를 한다. 판결문 집필에 최소 3~4개월이 걸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헌법재판소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해서 변론을 해 놓고는 바로 선고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변론을 했으면 예측가능한 일정한 기한 안에 선고를 하는 것이 맞지만, 헌법재판소는 변론과 선고 사이의 시간 간격에 대한 개념이 없다. 어떤 사건은 1년 혹은 2년 후에도 선고한다. 이런 헌법재판소가 이번 사건에서는 변론하고 다음 날 평의에서 결론을 내리고 몇 일안에 선고하겠다고 발표를 했던 것이다. 아마 헌법재판소 역사에서 초유의 일로 기록될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헌법재판소가 1월 31일(금) 피청구인(대통령 권한대행) 측에게 ‘당시 여야 양당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추천서 제출 경위’에 대한 상세 내용을 서면으로 ‘바로 당일 내’로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었던 점이다. 2월 3일(월) 선고를 3일 앞두고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서류 제출을 명한 것이다. 아마 결정문 초안을 집필하다가 사실관계에 의문 혹은 불명확한 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관계 확인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결론만 내려놓고 집필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 점을 우려해서 피청구인 측은 앞서 1월 24일(금) 변론 재개를 신청했었지만, 헌법재판소는 단칼에 기각했다.
이랬던 헌법재판소가 2월 3일(월) 선고 2시간을 남겨두고 선고를 취소하고 일주일 후에 변론을 다시 열겠다고 발표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가? 예정한 선고를 취소하는 것은 사정 변경에 따라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선고 2시간을 앞두고 갑작스레 선고를 취소하고 1주일 후 사건의 변론을 다시 열겠다고 발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심리와 선고를 졸속으로 진행했음을 자인(自認)하는 셈이 아닌가? 헌법재판소의 권위와 신뢰를 왜 스스로 추락시키는가?
여기서 헌법재판소가 일정을 왜 갑작스레 변경했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헌법재판소 공보관은 그 이유에 대해서 최소한 해명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해명은 달리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언론보도에 의해 해명되고 있다. 즉, 예정된 선고 이틀 전인 2월 1일(토) 피청구인(대통령 권한대행) 대리인이 국회의 권한쟁의심판청구에 대해 ‘청구인 적격’을 문제 삼은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권한대행(제1부총리)의 재판관 임명 보류로 인해 ‘국회의 선출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는 헌법상 ‘국회’이고, 따라서 권한침해를 다투는 심판을 청구하려면 그 의사를 표시하는 ‘국회 의결’이 있어야 하는데, 국회의장이 임의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것은 ‘청구인이 아닌 자’가 청구한 것이어서 각하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이 ‘청구인 적격’에 관한 논점은 기본적인 소송요건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직권으로 조사해야 하는 사항이다. 아마 헌법재판소는 결정문 초안을 집필하는 1월 31일(금)까지도 이 논점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월 1일(토) 피청구인 대리인이 이 논점을 지적하는 의견서를 제출하자, 선고일 당일 2월 3일(월) 오전에 재판관 평의를 긴급히 열고 이 논점을 비로소 다룬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재판관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고 팽팽한 의견 대립이 있었을 것이다. 이 논점을 묵살하고 선고를 강행하기에는 후폭풍의 위험부담이 너무 컸을 것이다.
2월 10일(월) 다시 열리는 변론에서는 아마 위 ‘청구인 적격’ 문제가 주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구인(국회) 측 대리인은 국회의장이 ‘국회의 대표자’로서 이 사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관 3인 선출권’은 합의제 기관인 ‘국회’가 가지고 있고, ‘선출권 침해를 당한 자’도 ‘국회’이다. 국회의장은 선출권도 없으며 선출권을 침해당한 바도 없다.
물론 이 사건에서 국회의장은 ‘자신의’ 권한 침해를 다투는 것이 아니고, 국회의 대표자로서 ‘국회’의 권한 침해를 ‘대신해서 다투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판례는 권한쟁의심판에서도 그렇고 헌법소원심판에서도 그렇고 지금까지 타인의 권한 혹은 기본권 침해를 대신해서 주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판시해 오고 있다. 이는 수십 건의 판례로 확립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예외가 전혀 없다. 그러니까 청구인은 ‘자신의’ 권한 혹은 기본권 침해를 다투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 확립된 판례를 변경하려면,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2항). 권한쟁의심판에서 인용결정은 과반수로 결정할 수 있지만, 판례 변경은 6명 이상의 찬성을 요구한다는 점을 위 헌법재판소법은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졸속 재판’으로 자신의 권위와 신뢰를 스스로 추락시키는가? ‘재판의 신속성’이라는 명분으로 항변하기에는 너무 졸속(拙速)이다. 다른 재판과의 형평도 전혀 맞지 않는다. 또 ‘9인 완전체’라는 명분도 설득력이 없다. 2017년에 헌법재판소는 지금의 ‘8인 체제’로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까지 내린 적이 있다. 지난 36년간 쌓아올린 헌법재판소의 권위와 신뢰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과오(過誤)를 범하지 않기를 간청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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